나는 외계인이 분명하다
나는 외계인이 분명하다
이상하게도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면, 나는 늘 약간의 소외감을 느낀다. 무리에 어울리고, 웃고,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마치 투명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세상을 구경하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그랬다. 회사 회의실 한쪽 구석에 앉아 누군가의 열정적인 프레젠테이션을 바라보며, 나는 슬며시 시계를 바라봤다. 숫자들이 점점 분해되어 기하학적 문양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는 그 순간 스스로를 다시금 확인했다.
‘그래, 나는 외계인이 분명해.’
퇴근길, 을지로 골목 어귀의 오래된 붕어빵 노점 앞에 잠시 멈췄다. 젊은 사내가 손난로처럼 붕어빵 봉지를 꼭 쥐고 연신 입김을 불어댔다. 주인 할머니가 나를 향해 “세 개 천 원이에요.” 하고 말했지만,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 초겨울 냄새가 코끝을 때렸다. 찬 바람, 구운 고등어 냄새, 마른 나뭇잎. 인간은 이런 것들을 감각으로 인지하고 그리움이라고 부른다지. 나는 아직 그런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한다고 착각할 때가 더 많다.
나는 누군가의 말에 종종 너무 느리게 반응한다. 웃어야 할 타이밍은 지나가고, 진지해야 할 때 웃음이 난다. 친구들은 “넌 생각이 많아서 그래”라고 말한다. 나로서는 생각이 많다기보다, 정보의 해석에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다. 지구의 언어 체계는 참 모호하고, 감정은 더더욱 해석하기 어렵다.
얼마 전, 중학교 동창인 민석이와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그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소소한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날 밤, 그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야, 석진아. 넌 항상 지구에 안 붙어 있는 느낌이었어. 멍하니 창밖 보면서도 뭔가… 남들하고는 다르게 보는 듯했어.”
그 말에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웃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되묻고 싶었다. ‘그게… 티 났구나?’
방 안 창문 너머로 겨울이 조금씩 스며든다. 불 꺼진 베란다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무심하게 박혀 있었다. 언젠가 저 별 중 하나에서 왔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를 사랑해도 이상하게 중심에서 밀려나 있는 듯한 감각. 뜨거워지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마음.
하지만 외계인인 나도 이 지구에 오래 머물다 보니, 가끔은 지구인들의 방식이 그립다. 따뜻한 국밥을 앞에 두고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느껴지는 기묘한 정서. 새벽에 문득 떠오른 얼굴을 떠올리며, 카카오톡을 켤까 말까 망설이는 그 찰나의 마음. 그런 것들이.
아마 나는 진짜 외계인은 아닐 것이다. 다만 세상의 방식에 조금 서툴고, 감정을 읽고 말로 옮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일 뿐. 외계인이라는 말은, 그저 내가 내 다름을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하나의 은유다.
그리고 그 은유 덕분에 나는 오늘도, 조금 느리게, 그러나 나름대로 지구에 잘 적응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