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뒷면에는 꽃이 핀다』를 읽고
꿈과 기억 사이를 떠도는 여정
책장을 덮은 뒤에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달의 뒷면에는 꽃이 핀다』는 그런 책이다. 처음엔 제목이 주는 몽환적인 느낌에 이끌렸고, 한두 페이지 넘기다 보니 어느새 나는 이 세계 안에 조용히 침잠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가 미묘하게 겹쳐진 듯한 세계다. 주인공 ‘루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억 상실을 겪으며, 매일 밤 기이한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녀는 달의 뒷면이라는 공간에 발을 들이고, 그곳에는 사람의 기억에서 잊힌 것들이 꽃의 형태로 피어나 있다. 이 설정은 너무도 아름다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슬프다. 특히 '시간이 흘러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순간들은 꽃으로 피어난다'는 구절은 한참 동안 마음을 붙잡았다.
책은 단순한 판타지 드라마를 넘어서, ‘기억’과 ‘상실’, 그리고 ‘치유’에 대한 이야기였다. 각각의 등장인물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있고, 그 상처는 꿈속 세계를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 현실에서는 무기력해 보이는 인물들이 달의 뒷면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특히 루나가 점차 자신의 과거를 복원해 가는 과정은 미스터리의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가는 듯한 긴장감도 느껴졌다.
작가의 문체도 이 소설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큰 몫을 했다. 짙은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묘사, 흐릿한 경계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 그리고 현실과 꿈의 이음매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서술 방식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긴 시처럼 느껴졌다. 때때로는 장면 하나하나가 그림처럼 눈앞에 그려졌다. 이런 문장 하나하나가 책의 감상을 더 깊게 만들었다.
기억은 얼마나 불완전하고, 또 얼마나 잔인한가. 하지만 잊힌 기억에도 향기가 남는다면, 그리고 그 향기가 언젠가 우리를 다시 불러낸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기억이 우리 삶에 정말 소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달의 뒷면에는 꽃이 핀다』는 그러한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던지는 작품이었다.
책장을 덮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직도 그 꽃들이 조용히 피어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낡은 꿈처럼, 이 이야기는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을 것 같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이야기를 찾는 이에게 강력히 추천한다.